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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매매거진 spring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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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그대들, 부디 마음을 맞잡고  
그대들, 부디 마음을 맞잡고
 
“잘 지내셨어요? 전화도 자주 못 드리고…. 저는… 그냥 잘 지내고 있네요.”
오랜만에 친한 동생에게 반가운 전화가 왔다. 마치 남의 이야기인 것처럼 ‘잘 지내고 있네요’ 라니. 여전히 독특한 그의 말투를 듣는 순간, 그가 환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다가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나는 그의 결혼식에서 주례를 본 적이 있다. 그것은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부부의 인연을 비롯한 모든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순간이었으니까. ‘힘들고 거친 세상, 사람과 사람끼리 한마음으로 의지하며 사는 것보다 더 값진 일이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사랑이니 존경이니 하는 것들도 필시 이런 마음가짐에서 파생했으리라.
주례를 허하자 동생은 옷값을 주겠다고 했지만 살림에 보태라는 말로 어렵게 거절했다. 그리고 백화점에 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거금 사십만 원을 주고 양복을 샀다. 새 양복을 차려 입고 대구행 고속열차를 탔다. 그런데 탑승한 지 얼마 안 되어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생각을 정리하면 좀 나아지겠지 싶어 요약해온 주례사를 원고지에 옮겨 적기 시작했다.
그래도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소설가 황석영 선생은 이십 대, 김훈 선생은 삼십 대에도 결혼식 주례를 봤다는데, 내 나이 사십에 주례를 보러 가는 길은 왜 그리 주체할 수 없이 떨렸던 걸까.
두 시간 전 예식장에 도착해 두 건의 결혼식을 살펴보았다. 식순과 주례자의 시선 처리를 미리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다가 시간이 임박한 가운데 결혼식 사회자를 만나 경험이좀 있느냐고 물어보니 처음이라고 했다. 신랑인 동생도 자기도 처음이라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럼 우리 셋 다 처음이니 떨지 말자고 ‘파이팅!’을 외쳤다.

어느새 음악이 흐르고 비눗방울이 날리는 식장에 서 있었다. 주례사를 해야 하는데, 다리는 자꾸 후들후들 떨리고 장갑을 낀 손가락은 원고지에서 미끄러지기를 반복했다. 원고지는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지 않는데 장갑을 벗으면 결례일 것 같아 장갑을 벗자, 벗어서는 안 된다, 둘 사이를 백팔 번쯤은 오간 것 같다.

그날 주례 보던 나의 떨림을 잊지 않았는지 동생은 정기적으로 내게 전화를 한다. 내가 고마움을 표할 사람은 수두룩한 반면, 나를 고마워할 사람은 그만큼 많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쯤, 어김없이 동생의 전화는 내 마음을 울린다. 문득 주례사의 내용이 떠오른다. 아래는 주례사의 일부다.

밥상을 들 때의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두 사람에게
한 아름에 들 수 없어 둘이 같이 들어야 하는 긴 상이 있다
오늘 팔을 뻗어 상을 같이 들어야 할 두 사람이 여기 있다
조심조심 씩씩하게 상을 맞들고 가야 할 그대들
상 위에는 상큼하고 푸른 봄나물만 놓여 있지는 않을 것이다
뜨거운 찌개, 매운 음식, 무거운 그릇도 올려질 것이다
또 상을 들고 가다보면 좁은 문이 나타나기도 할 것이다
좁은 문을 통과할 때 등지고 걷는 사람은 앞을 보고 걷는 사람을 믿고
앞을 보고 걷는 사람은 등지고 걷는 사람의 눈이 되어주며
조심조심 씩씩하게 상을 맞들고 가야 할 그대들
(중략)
오늘부터 같이 상을 들고 가야 하는 그대들이여
팔 힘이 아닌 마음으로 상을 같이 들고 간다면
어딘들, 무엇인들, 못 가겠는가, 못 들겠는가
오늘 여기 마음을 맞잡고 가야 할 두 사람이 있다.
동생은 밥상 들 때의 마음으로 결혼 생활을 해나가고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는 나의 소망이기도 하다. 밥상 들 때의 마음은 동생처럼 결혼을 통해 만들어진 가정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이 속한 사회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유지해가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믿는다. 조심조심 씩씩하게 상을 맞들고 갈수록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며 때때로 존경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될 터이다. 후에 나는 위의 주례사를 요약해 ‘부부’라는 시를 썼다. 부부도, 가족도, 나아가 모든 이가 실은 마음을 맞잡고 걸어가는 것이 인생 아니겠는가
.
글을 쓴 함민복은 1962년 충북
중원군에서 태어난 내륙 출신이지만,
1996년부터 현재까지 마니산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다 풍경에 반해
강화도에 정착해 살고 있다. 전업 시인인
그는 특유의 감성적인 문체가 돋보이는
시와 인간미가 살아 있는 에세이로
문단과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시집으로 <우울 씨의 일일>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등이 있고,
에세이집 <눈물은 왜 짠가>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 등이 있다.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김수영문학상,
박용래문학상, 애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함민복(시인) | 사진. 한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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